4차 산업혁명은 에너지혁명이고 이것이 부동산혁명으로 이어지며 인공지능 등의 첨단기술과 함께 인류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것임을 예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와 신산업 발굴을 통해 미래 일자리 및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벤처정치인입니다.
현 썬빌리지 포럼 의장
현 자유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장
현 자유한국당 분당을 당협위원장
19대 국회의원 (분당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17. 9.24.(일) 8시30분
대구 달서구 호림강나루공원에서
제11회 달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참가 종목은 반하프(공인), 건강달리기로 10km, 5km로 그동안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입상한 선수들에게 달서구 이태훈 구청장님이 상패를 주어 시상하였습니다.
여러 단체와 동별로 천막을 치고 주민이 한데 담소도 하고, 구민들의 우의를 다진 마을 잔치를 벌였습니다.
저도 월성2동 주민이며 월성2동 주민자치협의회 회원으로 참석하여 월성2동 천막에서 동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지냈습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2:15좋아요
지난 9월 23일. 14:00.
박약회(회장 이용태)가 주최하는 유교문화 학술대회가
구미시의 구미코에서 전국에 모인 유림 2,000여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박약회(博約會)는 전국 유교문화 학술발표대회를 통해 아름다운 전통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효사상을 드높이 며 선조들의 유학정신을 실천하여 도덕사회를 구현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박약회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줄임말인 '박약(博約)'을 기치로 출발한 전국 유림단체이며,
지난 2003년 7월 25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입니다.
아울러
박약회 대구지부(회장 조익래)는
80여명의 회원님들이 오전에는 선산김씨 평성 대월제를 방문하였고,
이어서 구미시에 있는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에 방문하였습니다
아침 8:30부터 저녁 18:00까지 종일토록 유교문화에 심취한 날이었습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1:31좋아요
□ 대구경북자유교육연합(상임대표
남진수, 고문 임구상)은
지난 9월21일 12시에 만촌동의
'그랑쥬아 뷔페'에서
확대임원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 2017년도 신입임원들 소개와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명사초청
강연회' '청소년 인성함양 수련대
회' 등 안건을 심의하였습니다.
□대경자유교육연합은 2009년에
설립된 교육NGO 단체로서
대구경북 교육발전과 공교육 정상
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인성교육 홍보와 전인
교육 활성화를 위해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 합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0:20좋아요
지난 9월 17일
함양 영취산에서
임응배 총동창회장, 정찬수 산우회장, 영남일보 손인락 대표, 허용구 15기 회장과 100 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원우 상호간 한층 더 화합하고 단합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기가 좋고, 경치도 좋은 곳에서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2인3각, 줄넘기 시합, 풍선 터뜨리기, 제기차기 등 옛날 운동회처럼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하였습니다.
함께 한 시간들은 훗날 되돌아 보면 행복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 행사를 준비해주신 15기 회장단인 허용구 회장, 홍종수 수석부회장. 강언주 사무총장 및 여러 임원들께서 수고하셔서 감사드립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49:07좋아요
update by 2017.09.11(월) 11:19:05좋아요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된, 한정초등학교(경북 시절였던)의 초임 3년차인 1979년 5월초, 즉 어린이날 며칠 전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직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는 남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밤에 학교를 지켜야 했습니다.
달성교육청의 장학사가,
'선생님! 내일 KBS에서 한정초등학교에 촬영하러 갈 테니,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준비를 잘하라고 말씀드리세요. 특히 청소도 잘하고, 손님 대접 잘하고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교장선생님께 숙직 상황을 보고하였습니다.
시골학교에 KBS 방송국에서 촬영온다는 소식에, 숙직한 초임 선생님의 말이 믿을 수 없어 교육청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개교하고 한번도 방송국에서 와서 쵤영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들 '교장선생님이 워낙 학교경영을 잘 하시고, 학생들의 재능과 소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교장선생님이기 때문에 방영을 추천했나보다.' 하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전교생이 300여명 정도였는데 모든 학생들이 1인 1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하는 등 특수시책을 운영하였습니다. 악기라고는 대개 캐스터네츠, 트라이앵클, 탬버린, 실로폰, 멜로디카, 멜로디언 등이었습니다.
우리들은 1교시부터 전교생이 운동장 트랙을 행진하며 연습을 했습니다. 곧 올테니까 한번만 더 연습하자며 트랙을 수도 없이 돌았습니다. 쉬다가 연습하고, 쉬다가 또 트랙을 돌면서 연습하고, 그렇지만 4교시를 마쳐도 방송국에선 오지 않았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할 수 없다며, 1, 2학년은 하교하라고 하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5교시를 마쳤는데도 안와서 3, 4학년도 하교를 하였습니다. 6교시까지 마쳤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으니 학교도, 교육청도 방송팀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청소를 다하고 종회를 하는데, 드디어 좁은 교문에 커다란 버스가 겨우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5, 6학년들은 함성을 지르며, 모두 악기를 들고 운동장에 나와 행진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흘러도 촬영기사들은 운동장으로 나오지 않고, 분위기가 좀 이상했습니다.
교장실에서 인사하고 촬영팀과 협의했는지, 교감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교무실로 오시면서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닌데' 하셨습니다.
'이 선생, 6학년 모두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요. 그리고 옷도 좀 바꿔 입고.'
'네에?, 왜요?'
어제 숙직을 해야 해서 점퍼와 티셔츠를 입고 와서 정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르고 교감선생님의 지시로 옆에 있던 선생님들의 와이셔츠와 넥타이, 양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때는 소규모학교는 교감이 수업을 하던 시절이어서, 제가 6학년 두 반을 합반하여 다목적 교실에서 70명이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촬영팀이 우리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보조팀들이 부산하게 자리를 만들고, 조명도 설치하고, PD가 저를 불러 촬영 내용과 의도를 설명하였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곧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오나 도시 어린이들은 선물이니, 공원이니 놀러가고 좋은데, 시골 특히 농번기가 끼인 학교의 아이들은 농사일을 도와야 하니 어린이날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내용으로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하려 하니 촬영 협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5월초가 농번기이면서 학생들이 일손을 돕는 곳은, 양파를 뽑는 한정과 창녕 지역밖에 없었으니 한정초등학교가 적임지였습니다. 학교가 오지라 한정초등학교를 찾아오는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면서 꼭 촬영해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콘티는 대충 이러했었습니다.
담임이 출석을 부르면, 출석한 아이는 '예'하고 대답을 하고,
결석한 아이는 '--' 대답이 없으니, '000는 왜 안 왔나?'하면
'네에, 양파뽑느라고 바빠서 못왔어요.'
결석이 한명도 없어서 안된다고 하니, 모두가 난감해 했습니다.
눈부시게 밝힌 조명, 촬영기가 돌아가는 소음, 빨리 촬영하자고 조르는 아이들의 눈망울, 협조해달라는 PD의 재촉 등에 저도, 애들도 모두가 정신이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PD의 'Q', 'NG'가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촬영은 성공(?)적으로 각색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기들은 소정의 촬영을 성공했는지 고맙다고 하면서 철수했습니다.
촬영팀을 따라 교실밖 계단을 내려가다 순간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여학생이 4명이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촬영보조팀이 4명의 결석생을 연출하도록 이 애들을 밖으로 내보낸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눈초리에 원망이 서려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소름이 돋습니다.
5월 5일, KBS는 아침 방송 시간에 방영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방송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15년 동안 담임하면서 저는 출석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모든 담임은 수업 시작할 때 출석을 부르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학교에 근무하면서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저는 'NO'를 했습니다.
38년이 지난 지금 이 여학생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그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교육 현장에서 절대로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졌고, 수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저 나름대로의 교육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얘들아, 정말 미안해요.'
update by 2017.08.22(화) 10:56:49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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