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40년 동안 오직 교육만 생각한
유아․초등․중등․특수교육을 두루 섭렵한
교육전문가 이 태 열
학력
·대구비슬초등학교(제15회) 졸업
·현풍중학교(제18회) 졸업
·현풍고등학교(제18회) 졸업
·대구교육대학(제12회)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행정학사) 졸업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교육학석사) 졸업
주요 경력
·1976.10. 한정, 금포, 용계, 양북초등학교 교사
·1987.3. 경북경주교육청 과학교육자료실 파견교사
·1990.3. 경주월성, 대구현풍초등학교 교사
·1995.3. 대구달성교육청 과학교육자료실 파견교사
·1998.3. 대구화원초등학교 교사
·1999.9. 대구달성교육지원청 장학사
·2000.9. 대구시교육청 인사담당 장학사
·2003.3. 대구선원초등학교 교감
·2005.3. 대구시교육청 초등장학담당 장학사
·2007.3. 대구시교육청 초등장학담당 장학관
·2008.9. 대구조암초등학교 초대교장
·2011.3. 대구월암초등학교 초대교장
·2012.3.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장
(유아,초등,중등,특수인사담당)
·2014.9. 대구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
(유아,초등,특수담당)
·2015.9. 대구시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
·2016.8. 정년퇴직
현재 활동
·우리가족 기살리기 범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대구교육대학교 제24대 총동창회장
·대구비슬초등학교 제13대 총동창회장
·한국마이더스장애인협회 자문위원
·대구박물관협의회 자문위원
·박약회 이사
·달서구 청소년지도협의회 회원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에 모임) 회원
·월성동 주민자치회 회원
·월성동 발전협의회 회원 ·영남일보 CEO 아카데미(수학 중)
상장 및 표창장
․ 교육장 : 상장 6회, 표창 3회
․ 교육감 : 상장 6회, 표창 4회
․ 교육부장관 : 상장 1회, 표창 2회
․ 모범공무원(국무총리)
․ 홍조근정훈장(대통령)
주요 실적
·대구선원초등학교 교감
-대구광역시교육청지정 ICT시범학교로 학생들에게 e러닝교육과 창의성교육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으며, 설치한 교재원에 개구리가 살고 있어서 '개구리가 우는 학교'라는 별칭이 붙음
·대구시교육청(초등교육과) 장학담당장학사
-신규교사의 교수력을 신장하기 위해 중견교사(멘토) 1명과 신규교사 3명이 한 팀이 되어 운영하도록 한 ‘신규교사 멘토링’ 사업을 기획
-2005년 대한민국 교육박람회 팀장으로 성공적 운영
·대구시교육청(초등교육과) 장학담당장학관
-대구광역시교육청 예절체험교실 신설 기획
-대구광역시교육청 학부모교육센터 기획
-선생님의 교수력을 강화하기 위해 권역별 연수시스템 구축한
'두레장학'을 운영 : 제2회 전국혁신경진대회(우수상 수상)
·대구조암초등학교 초대교장
-인성과 학력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 명품교육으로 신설학교를 최단 기간에 안정화 성공(아파트 값을 올린 교장으로 별칭 받음)
-선택형 평가를 서술형 평가로 전환하여 학생들의 학력 신장 및 타 학교에 보급
·대구월암초등학교 초대교장
-과밀학교인 조암초등학교를 분리하여 월암초등학교를 개교하였으나, 학생들이 전학하지 않아 할 수없이 월암초등학교 초대교장으로 전근하자 400여명의 학생들이 따라 전학함(교장따라 전학간 스타교장 별칭 받음 : 서울신문 2011.3.10. 9면 보도)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장(유아,초등,중등,특수 인사담당)
-인사정책 혁신과 체계적인 연수
-지친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치유하도록 '에듀힐링' 기획, 운영
-선생님의 업무경감 정책 추진
·대구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유아,초등,특수교육담당)
-유치원 평가 지표를 최소화하여 유치원 선생님들의 업무경감
-학생 중심의 협력학습으로 수업방법을 개선
-선생님들의 교수력을 신장하기 위해 역지사지 연수를 개발, 적용
-특수교육의 발전에 올인하여 제2회 대한민국어울림 행사 준비, 장애학생 특성화고등학교 설립 준비, 특수교사의 권익을 위해 특수 3학급에 특수부장을 임용하였음
·대구시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초중학생의 언어발달능력 신장을 위해 듣기(청해력), 읽기(독해력)의 섬돌 프로젝트를 운영하였음.
-제1회 교육장배 바둑대회 개최
교육자인 이태열은 시골인 달성군 유가면 음리에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로는 끼니를 거르기도 하여,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죽을 먹어야 했습니다. 어렵게 현풍중학교에 진학했으나 등록금을 제때 못내어 등교 정지를 당하기도 했었고, 이웃 어른들의 도움으로 현풍고등학교와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교사 임용대기 중 1년 7개월 동안 막노동(대명정미소와 승리기계제작소)을 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였습니다.
이태열은 갑오년(1954년) 청말띠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말처럼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성격도 온순하고, 의사소통도 잘하며, 사회성도 좋고, 변화하는 현실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편이었습니다.
때로는 진취적이고, 때로는 현실에 순응하는 긍정적인 품성이라서인지 천부적인 적성이 천생 선생이었습니다.
1976년 10월 6일, 22세에 대구한정초등학교(현재는 폐교)에서 초임교사를 시작으로 교직생활 40여년 중 교사 17년, 교육청 파견 6년, 교감 2년, 교장 3년6월, 전문직 11년6월로 근 40년 동안 오직 교육만을 생각하며 유아․초등․중등․특수교육을 두루 섭렵한 교육전문가입니다.
제2의 인생을 새롭게 펼치려는 이태열은 남은 정열을 쏟아,
학생은 신나고, 선생님은 보람 있고, 부모님은 만족하고, 대구시민은 박수치는 대구교육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TV촬영과 여학생의 눈물
2017. 9.24.(일) 8시30분
대구 달서구 호림강나루공원에서
제11회 달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참가 종목은 반하프(공인), 건강달리기로 10km, 5km로 그동안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입상한 선수들에게 달서구 이태훈 구청장님이 상패를 주어 시상하였습니다.
여러 단체와 동별로 천막을 치고 주민이 한데 담소도 하고, 구민들의 우의를 다진 마을 잔치를 벌였습니다.
저도 월성2동 주민이며 월성2동 주민자치협의회 회원으로 참석하여 월성2동 천막에서 동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지냈습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2:15좋아요
지난 9월 23일. 14:00.
박약회(회장 이용태)가 주최하는 유교문화 학술대회가
구미시의 구미코에서 전국에 모인 유림 2,000여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박약회(博約會)는 전국 유교문화 학술발표대회를 통해 아름다운 전통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효사상을 드높이 며 선조들의 유학정신을 실천하여 도덕사회를 구현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박약회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줄임말인 '박약(博約)'을 기치로 출발한 전국 유림단체이며,
지난 2003년 7월 25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입니다.
아울러
박약회 대구지부(회장 조익래)는
80여명의 회원님들이 오전에는 선산김씨 평성 대월제를 방문하였고,
이어서 구미시에 있는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에 방문하였습니다
아침 8:30부터 저녁 18:00까지 종일토록 유교문화에 심취한 날이었습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1:31좋아요
□ 대구경북자유교육연합(상임대표
남진수, 고문 임구상)은
지난 9월21일 12시에 만촌동의
'그랑쥬아 뷔페'에서
확대임원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 2017년도 신입임원들 소개와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명사초청
강연회' '청소년 인성함양 수련대
회' 등 안건을 심의하였습니다.
□대경자유교육연합은 2009년에
설립된 교육NGO 단체로서
대구경북 교육발전과 공교육 정상
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인성교육 홍보와 전인
교육 활성화를 위해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 합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50:20좋아요
지난 9월 17일
함양 영취산에서
임응배 총동창회장, 정찬수 산우회장, 영남일보 손인락 대표, 허용구 15기 회장과 100 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원우 상호간 한층 더 화합하고 단합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기가 좋고, 경치도 좋은 곳에서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2인3각, 줄넘기 시합, 풍선 터뜨리기, 제기차기 등 옛날 운동회처럼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하였습니다.
함께 한 시간들은 훗날 되돌아 보면 행복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 행사를 준비해주신 15기 회장단인 허용구 회장, 홍종수 수석부회장. 강언주 사무총장 및 여러 임원들께서 수고하셔서 감사드립니다
update by 2017.09.25(월) 10:49:07좋아요
update by 2017.09.11(월) 11:19:05좋아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비슬초등학교 4학년 때,
저는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모든 선생님을 미워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교대를 졸업하였고, 마침내 선생님이 되었다는 인사발령 소식을 접하고 밤새 뜬 눈으로 생각했습니다.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이 선생들인데 이제 내가 선생이 되다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래, 나는 절대 그런 나쁜 선생은 안 될거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다음은 저의 아픈 기억입니다.
□ 낙수수집과 영화관람 이야기입니다.
아침부터 온종일 600여명의 전교생이 마음 들떠서 쉬는 시간마다 왁자지껄 시끄러웠습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영사기를 구입하여 학년별로 영화를 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칸 교실 크기의 강당교실에 암막을 설치하여 1교시에는 1, 2학년 동생들이 6.25 전쟁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들은 바로 우리 국군이 이기고 있는 장면일 것 같았습니다. 3교시에는 3, 4학년이 강당교실에 입장하여 영화를 볼 차례였습니다.
드디어 우리 4학년 차례라서 복도에 나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이태열! 너는 가정실습할 때 낙수(落穗, 떨어진 이삭) 수집을 안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수 없다. 혼자 교실을 잘 지키고 있거라.”
청천벽력 같은 담임선생님의 말은 계속 내 귓전을 울렸고, 저는 자리에 앉아서 2시간동안 눈물만 훔치고 있었었습니다.
‘그래, 난 낙수 수집한 벼 알곡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못 본다네.’
내 생전 처음 볼 수 있는 영화를 못 본다니, 낙수 수집을 못해 벼 알곡을 제출하지 않은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골학교인 달성군 비산초등학교(지금은 대구비슬초등학교로 개명)는 매년 부모님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 가정실습을 실시하였습니다.
봄에는 보리베기와 모내기를 위한 가정실습을, 가을에도 벼베기와 보리심기를 위한 가정실습을 각각 6일씩을 실시하였습니다.
친구들은 가정실습을 하면 집에서 신나게 놀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저는 보리베기와 벼베기를 위한 가정실습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정실습을 하고 나서는 낙수(落穗)를 수집하여 등교할 때 곡식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가정실습을 하고 나면, 반드시 봄에는 보리 알곡을, 가을에는 벼 알곡을 수집하여 고봉 한 되 이상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굳이 학생들에게 가정실습을 하는 명분은
먼저 부모님들의 일손을 돕는 것이었고,
그리고 논밭, 길거리에서 떨어져 있는 보리와 벼이삭을 주워 낭비되는 곡식을 절약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낙수를 수집하여 제출하면 모아서 학교에 필요한 교육기기를 구입하도록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농사를 지으니까 구태여 낙수를 수집할 필요가 없었고, 집에서 추수한 알곡을 제출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동생은 집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니 가정실습 마치고 알곡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가정실습 동안 온 논밭을 헤매며 떨어진 알곡을 수집하였습니다.
어머니와 동생, 저 셋이서 동네에서 근 십리가 되는 현풍까지 걸어가 온종일 낙수를 수집하였습니다.
보리 이삭은 제법 떨어져 있어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벼 이삭은 논주인이 모두 알뜰히 수집하여 가버리니 벼 이삭이 떨어질 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혹 떨어진 이삭은 대부분 쭉정이라 셋이서 수집한 알곡을 훑어보면 겨우 고봉 한 되밖에 안되었습니다.
아침에 등교할 때 동생이 먼저 울기 시작하니, 어머니는 벼 알곡을 동생에게 먼저 주고, 저에게는 곧 주워 줄테니 선생님께 잘 말씀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담임의 여러 번 독촉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을 가정실습 후 벼 알곡 1되를 제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두어 달 지나자 학교에서는 낙수를 모아 영사기와 ‘6.25 전쟁 영화’를 구입하여, 겨울방학하기 전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차례대로 방영하였고, 저는 생전 처음으로 그토록 보고 싶던 영화를 못보고 말았습니다.
꼭 15년이 지난 1976년 10월 6일, 모교인 비슬초등학교의 이웃학교인 한정초등학교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4학년인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영화를 15년이 지난 1976년 10월말에 저는 과학실에 보관하던 영사기(엘모 8mm 영사기)를 숙직실에 설치하여 밤새도록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왜 저에게 영화를 못보게 교실을 지키라고 하셨을까?
정말 낙수수집을 안해서 영화를 못보게 했을까? 지금도 궁금합니다.
update by 2017.08.22(화) 10:45:26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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